세계 대공황 1929년 미국의 주식시장 폭락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말합니다. 이는 1929년부터 1930년대까지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난 경제 침체 현상으로, 결국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세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미국의 대공황은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깊은 공황이었고, 왜 미국의 대공황이 전 세계적인 침체로 확산하였는지 대해 정확한 원인은 지금까지도 불분명합니다.
다만 많은 경제학자를 통해 다양한 원인이 주장 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원인으로는 미국 주식시장의 폭락입니다.
1929년 10월 24일, 미국의 주식시장에서 대규모의 주가 폭락이 발생했습니다. 이 폭락은 그동안 과열되었던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전 세계의 경제 위기로 이어집니다.
이때 미국의 GDP는 30~40% 사라졌고, 1929년 실업률 3% 수준이던 미국은 1933년에는 25%까지 증가합니다. 농업 부분을 제외하고 37%까지 실업률이 증가했습니다. 대공황이 시작된 시점부터 3년 동안 미국 주식 시가총액의 88.88% 사라졌으니 엄청난 경제 침체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대공황
1928년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당선인 연설에서 “미국의 번영은 무한히 지속”될 것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당시 미국 경제는 엄청난 호황이었습니다.
GM 자동차 경영자 또한 “누구나 주식시장에 주당 15달러를 투자하면 부자가 된다”라는 말을 잡지에 기고할 정도였습니다.
실제 1929년 1월 1일 뉴욕 타임스를 확인해보면 “미국은 지난 12개월 동안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다. 과거에 근거해서 미래를 예측한다면 새해는 축복과 희망의 해가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 누구도 미국의 대공황을 예측할 수 없었고, 실제로 1929년 주가는 1921년 저점 대비 4배가 상승하고 있었고, 경기 확장기를 거치며 기업은 높은 이윤으로 주식 배당금은 지속해서 상승했습니다.
고임금이 지속되자 노동자는 저축과 함께 주식투자를 하게 되고, 정부의 낮은 금리와 통화 공급 확대로 인해 기업과 개인들은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주택, 자동차 등 엄청난 소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이후 발생한 1929년 10월 24일 주식시장 붕괴는 긴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실제 1929년 10월 24일 주식시장 폭락 이후 J.P. Morgan은 시장의 패닉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자본으로 주식을 매입하기도 했지만, 10월 29일 다시 한번 투매가 시작되고 이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폭락이 이어졌습니다. 10월 29일부터 11월 13일 2주 동안 미국 주식은 300억 달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지출한 금액과 같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후버 대통령은 대공황 시기 ‘후버댐’ 건설을 통해 실업자를 구제하려 했으며, 이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일환 중 하나였습니다.
세계 대공황 원인
금본위제
금본위제는 각국의 화폐 가치를 금의 양으로 고정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금본위제는 19세기 후반부터 세계 경제의 안정을 위해 채택되었습니다.
이는 각국의 경제 정책을 제약했고,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들어 세계 대공황 발생에 기여했습니다.
보호무역주의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무역을 위축시켰고, 세계 경제 위기를 심화시켰습니다.
과도한 자본주의
1920년대의 미국 경제는 ‘과도한 자본주의’로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했고, 이는 경제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게 되었습니다.
전쟁 후의 재건과 복구에 힘을 써야 했고, 과잉 생산은 결국 상품 가격의 하락과 함께 기업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세계화
1920년대는 세계화의 시대로, 각국의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미국 경제 위기는 전 세계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
1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줬고, 전쟁 후 세계적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실업률이 증가했습니다.
세계 대공황 그 후
세계 대공황 193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각국 정부는 대규모의 재정지출과 공공사업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했습니다.
또한,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자국 통화의 가치를 조정함으로써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을 유연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역할 확대
세계 대공황을 경험한 각국은 정부의 역할 확대에 나서고, 이에 따라 사회복지제도가 확충되고 경제 정책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국제기구의 출범
각국은 국제기구의 출범을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해나가는데, 이에 따라 국제무역이 확대되고 세계 경제가 안정화되기 시작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등장
세계 대공황은 신자유주의의 등장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경제 이념입니다.
세계 대공황 당시, 각국 정부는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규모의 재정지출과 통화팽창을 단행했지만, 이러한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경제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세계 대공황의 원인을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보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정책들을 내세웁니다. 이러한 정책은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결론
세계 대공황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경제 위기로, 그 영향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공포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경제 위기에 대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었습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과도한 개입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완벽한 정치, 정책이 없기에 이 경험을 통해 경제 위기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겠습니다.
2022년 전 세계적인 주식시장의 하락으로 많은 투자자분들께서 세계 대공황이라는 용어를 접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개인 투자자는 지수 하락에 베팅했지만, 2023년부터 주식시장은 인류의 위기 극복 능력을 보여주듯 크게 상승하며 부정론자들의 시그니처인 ‘세계 대공황’이라는 용어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