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부인 엔화 가치 하락 일본 경제 영향

와타나베부인 그들은 일본 엔화 가치 하락과 함께 1980년대 나타난 일본 투자자들을 의미합니다. 투자자들을 대표하는 용어인 와타나베부인에 대해 알아보고 일본 경제에 미친 영향력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와타나베부인이란?

와타나베부인 –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외화로 환전 후, 해외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 yen carry trade)하는 일본의 중·상류층 주부 투자자들을 이야기합니다.

와타나베(Watanabe)는 일본에서 5번째로 흔한 성으로 한국의 ‘김 여사’ 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최근 들어 일본 개인 투자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중년여성

  • 엔 캐리 트레이드란? 일본의 화폐 가치인 ‘엔()’과 영문 ‘캐리 트레이드’의 합성어를 의미합니다. ‘캐리 트레이드’는 쉽게 말해 저금리로 조달된 자금으로 외국 자산에 투자하는 거래를 뜻합니다. 즉 저금리로 조달된 엔화를 기반으로 외국 자산에 투자 후 이익을 얻는 차익거래를 의미합니다.

와타나베부인 등장 시기

와타나베부인 등장 시기는 199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수출에 불리한 환율 정책으로 제조업체가 해외로 이전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실직했습니다.

제조업 강국 일본은 점점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1997~2007년) 이라고 부릅니다.

현재까지도 거품 경제 이전 찬란했던 과거를 일본인들은 회상할 뿐 당시 경제 강국의 위상과 자신감은 아직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거품 경제에 대한 정보는 하단 링크를 통해 보다 자세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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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고정 환율제를 시행하고 있어 엔화의 가치가 높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사회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어 개인들이 알음알음 정보를 통해 외환거래를 할 정도의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와타나베부인-앤캐리
와타나베부인-앤캐리

경기침체로 인한 자산 가치 하락과 실업률 상승으로 생계난에 시달리게 되자, 당시 일본의 주부들은 일본 자국 금융권의 낮은 저축 이자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들은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고자 하였고 해외 투자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와타나베부인 투자 방식

와타나베부인은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높은 금리의 외화로 투자하며 이때 발생하는 금리 차이로 수익을 내는 차익 거래를 진행했습니다.

이 차익거래가 그들의 투자 방식이었습니다. 대부분 가정주부였던 이들은 주식이나 외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투자 정보를 얻고, 단기간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와타나베부인-외환거래
와타나베부인-외환거래

이들의 주된 투자방식은 개인 외환거래 즉 FX(Foreign Exchange) 마진거래입니다.

마진거래는 일정액의 증거금을 자국 선물회사나 중개업체에 맡기고, 특정 해외통화의 변동성을 예측하여 두 종류의 통화를 동시에 사고파는 방식의 외환 선물거래입니다.

흔히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달러를 사는 동시에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엔화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와타나베부인 투자 성공?

와타나베부인의 투자는 초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그들은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수익을 본 그들은 저금리의 일본 엔화를 빌려 다시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규모의 국제금융거래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와타나베부인으로 통하는 투자자들은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하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리는 일본 투자자들은 글로벌 외환시장의 큰 손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와타나베 부인들의 투자가 급증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락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해외에 나가 운영하고 있었던 기업들은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합니다.

이에 따라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게 됩니다.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는 일본 경제에 큰 혼란을 야기했고, 정부는 1994년 엔화를 고정환율이 아닌 변동환율로 결정하게 됩니다.

일본경제 및 사회

와타나베부인들의 투자는 엔화 가치 하락과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전까지 엔화는 1949년부터 고정환율제로 유지되어 왔는데, 변동환율제로 변경되며 엔화의 가치를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1994년 엔화의 가치를 안정시키고, 와타나베 부인들의 해외 투자를 줄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엔화의 변동제는 와타나베부인들의 투자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엔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가져와 일본 경제에 더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와타나베 부인은 고정 환율에서 얻던 수익이 변경되며 본인들이 매도하면 매도할수록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고스란히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와타나베부인-투자-실패
와타나베부인-투자-실패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자, 와타나베부인의 투자는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엔화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고 결국 그들은 투자한 자금을 모두 잃게 됩니다. 이들의 투자 실패는 ‘가정 파탄’과 함께 ‘개인의 좋지 않은 선택’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들의 투자 실패는 일본 사회에 큰 혼란을 발생시켰습니다. 당시 엄청난 손실을 기록하게 된 일본 투자자들의 일화는 코로나 버블 시기 ‘동학 농민 운동’을 표방한
대한민국 ‘동학개미 운동’의 실패와도 일정 부분 닮았습니다.

즉, 개인 투자자가 몰린 곳에 영원한 상승은 어렵다는 것과 투자시장에서 무분별한 광기는 거품을 만들고 누군가 돈을 잃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결론

와타나베부인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무분별한 묻지마 투자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일본 경제의 통화가치 정책을 변경하는 데 이르기까지 한, 이 광적인 투자 열풍은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과 경제 전반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당시 일본 경제가 장기적인 침체 상황이었기에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고,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이때의 와타나베부인 투자로 엔화의 변동제가 시행되었고, 엔화 가치의 하락으로 자국에서 운영 중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점차 강화되었습니다.

이는 경제가 회복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일본 경제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와타나베-부인-엔화-영향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후, 생계의 위협으로 시작된 와타나베부인의 투자는 결국 개인 당사자의 자산 증식뿐 아니라 일본 경제 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일본 사회 구조에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현재까지도 와타나베부인으로 불리는 일본의 투자자들은 전쟁 같은 트레이딩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